3번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는 한복을 입은 금발 소녀, 캐나다 국기가 달린 스쿠터를 타고 피자를 배달하는 캐나다아저씨가 보이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선 자주 마주치는 흑인 꼬마가 또렷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며 내게 배꼽인사를 한다. 매일매일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사는 곳은 뉴욕도 런던도 아닌 바로 서울이다. 서울, 그 중에서도 이태원 말이다.
이태원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이 근처에 ‘배(梨)밭’이 많다고 해서 나왔단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여인들을 범하면서 태어난 아이들이 모여 살던 곳이 이태원 일대고, 그래서 '이태원(異胎院)'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이타인(異他人)'. 또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부녀자, 이른바 '환향녀(還鄕女)'들이 정착한 곳도 이태원이란 말도 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이태원의 역사는 이미 조선시대때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일제시대때는 일본군 사령부가, 해방 후 용산기지에 미 8군이 주둔하면서
이태원은 외국 문화가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태원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건 2011년 여름이다. 강남근처에서 친구와
함께 살다 친구가 사정이 생겨 급하게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나도 새로운 집을 찾아야만 했다. 학교도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 논 상태여서 굳이 학교 근처에 살 필요도 없어졌고, 뭔가 새로운 곳에 내 보금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지난
약 10여년간 런던, 베를린, 서울에서 이사만 20번을 넘게 해본 나는 집을 찾을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첫번째 '자연' 이다. 유년시절을 꽤 시골에서 보냈던 나는 자연과 아주 친한 사람이었는데, 부모님이 도심으로 이사를 하시게 되면서 더 이상 자연으로 돌아가 쉴 곳을 잃은 나는 '초록과 파랑'이 늘 그리웠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 될 수 있기에..서울도심 안에서
자연과 가까이 살 수 있는 주거 지역은 많지 않은데 그 중 한강근처는 집값이 너무 비싸 월세도 전세도 감당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눈을 돌린 곳이 바로 남산 근처였다.
두번 째 나의 조건은 '여행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나 스스로를 'sentimental vagabond(감성 방랑자)'라 부를 만큼
여행과 방랑을 좋아하는 나 이지만, 시간과 금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늘 여행을 하며 살 수는
없는 지라 일상 속에서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곳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이태원 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이라는 곳을 찾아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그 곳이라면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을 듯 했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이다. 서울의 터무니 없는 집값을 감당하기란 쉽지가 않다. 전세는 물론이거니와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도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담그는 청춘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였고, 그나마 이태원의 해방촌이나 경리단길 쪽은
내가 이사를 오던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집 값이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물론 지금은 입소문을 타고 일주일에
두세개 가게가 새로 오픈을 할 만큼 인기가 많아져 집 값 역시 많이 뛰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조건을 충족 시키는 곳을 찾다보니 이태원 해방촌과 경리단길 근처의 집들을 살펴 보게 되었다. 유럽에는 영국에서는 flat share, 독일에서는 WG라 부르는 주거 형식이 있는데 방이 여러개 있는 집을 몇몇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형식이다. 특히나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학생들이나, 오래 머물지 않는 외국인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이미 런던과 베를린에서 이런 공동거주의 경험이 있고, 특히나 베를린에서는 함께 살던 Mitbewhoner(룸메이트)들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 좋은 기억이 있어 한국에서도 이런 공동주거를 하는 집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러던중 Craigslist 라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런 공동거주 집의 룸메이트를 찾는다는 공고를 많이 찾아 볼 수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와 조건이 맞을 법한 집들과 몇군데 컨택을 하고 인터뷰를 본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네번째 룸메이트가 되었다.
집 찾는데 웬 인터뷰나 싶지만 공동거주를 하기 앞서 서로 성격이나 생활패턴에 대해 파악하고, 같이 살아도 문제가 없는지 알아 보기 위해 인터뷰는 필수이다. 여담이지만 베를린에서 집을 구할 때 인터뷰를 한시간이나 보기도 했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서툰 독일어로 "ich liebe Beer" 라고 말하는 얘기를 듣고 바로 나를 룸메이트로 정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미 런던과 베를린에서 이런 공동거주의 경험이 있고, 특히나 베를린에서는 함께 살던 Mitbewhoner(룸메이트)들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낸 좋은 기억이 있어 한국에서도 이런 공동주거를 하는 집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러던중 Craigslist 라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런 공동거주 집의 룸메이트를 찾는다는 공고를 많이 찾아 볼 수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와 조건이 맞을 법한 집들과 몇군데 컨택을 하고 인터뷰를 본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네번째 룸메이트가 되었다.
집 찾는데 웬 인터뷰나 싶지만 공동거주를 하기 앞서 서로 성격이나 생활패턴에 대해 파악하고, 같이 살아도 문제가 없는지 알아 보기 위해 인터뷰는 필수이다. 여담이지만 베를린에서 집을 구할 때 인터뷰를 한시간이나 보기도 했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서툰 독일어로 "ich liebe Beer" 라고 말하는 얘기를 듣고 바로 나를 룸메이트로 정했다고 한다.
경리단에서 남산으로 향하는 중턱 쯤에 자리한 내 새 보금자리와 함께, 지난
일년간의 이태원 생활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 첫번째 시작은 '동네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출발은 '데미안' 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데미안은 인도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세인트마틴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다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와 이태원에 자리를 잡고 군입대전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친구였다.
스테판이라는 독일 친구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데미안은 대걸, 타고르, 데미안 불리는데 이태원에서 열리는 모든 파티의 중심에 있고, 그 특유의 독특한 패션 때문에 가끔 스트릿 패션 잡지에서도 얼굴을 볼 수있어 이태원에서 데미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데미안 덕분에 이태원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사람들과 조금씩 안면을 트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스테판이라는 독일 친구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데미안은 대걸, 타고르, 데미안 불리는데 이태원에서 열리는 모든 파티의 중심에 있고, 그 특유의 독특한 패션 때문에 가끔 스트릿 패션 잡지에서도 얼굴을 볼 수있어 이태원에서 데미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데미안 덕분에 이태원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사람들과 조금씩 안면을 트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이태원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내 또래 젊은 청춘들은 데미안 처럼 자윤분방하고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 참
많다. 웹디자인, 메이크업, 재주가 참 많은 마일로,
뉴욕 pratt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휴학을 하고 스탠딩커피에서 일 하고 있는 우리 딸내미
태헌이, 데미안과 함께 런던에서 패션공부를 하는 TK, 게이클럽에서 일하는 스트레잇 남자 권룡씨와 그의 예쁜 여자친구 지민이(해방촌에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중이다), 늘 태국 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경리단 태국음식점 부다스벨리의 안주인 리사언니등..
한국 친구 뿐 아니라 쇄골에 "헐" 이라는 너무 깜찍한 타투를 새기고 경리단에 있는 마이크로브류이 craftworks에서 일하며 패션 MD로 활동중인 AJ, 아일랜드에서 온 덤앤더머 파티애니멀 알렉스와 조(조 덕분에 나는 단편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다-http://youtu.be/aX3i8vQHsq0), 모델로 활동중인 제이드 등 도 빼놓을 수 없는 이태원 친구들이다.
이태원 친구들은 다들 하나같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지만 모든 것에 열려 있고 늘 행복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각자 내면에는 나름의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한국 친구 뿐 아니라 쇄골에 "헐" 이라는 너무 깜찍한 타투를 새기고 경리단에 있는 마이크로브류이 craftworks에서 일하며 패션 MD로 활동중인 AJ, 아일랜드에서 온 덤앤더머 파티애니멀 알렉스와 조(조 덕분에 나는 단편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다-http://youtu.be/aX3i8vQHsq0), 모델로 활동중인 제이드 등 도 빼놓을 수 없는 이태원 친구들이다.
이태원 친구들은 다들 하나같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지만 모든 것에 열려 있고 늘 행복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각자 내면에는 나름의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적어도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태원은 아마 서울, 아니 한국에서 구성원이 가장 다양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라서 그럴까. 사람들이 가장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서울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 어떤 모습을 한 사람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의 본연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다양함'을 입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청춘들 모두는 각기 다른 생각과 개성을 가지고, 다른 꿈을 꾸며 살아 가고 있지만 획일됨을 강요 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을 포기하고, 기성세대들이 정해 놓은 '올바른 청년상'에 우리를 끼워 맞추기 급급할 뿐이다.
나 역시 한때는 내 본연의 모습보다, 사회가 원하는 나의모습에 나를 끼워맞추기 급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한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시간은 나를 크게 변화 시켰다. 이태원사람들끼리 종종 하는 말이 6호선을 기준으로 녹사평-이태원-한강진만 벗어나도 마음이 불안 하단다. 그만큼 이태원은 우리에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며 그야말로 '이태원 프리덤'인 것이다.
이태원과 청춘이라는 단어는 오묘하게도 닮아있다.
청춘들이 만들어가는 공간, 청춘이 가장 청춘다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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