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시절
이성복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도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 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 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 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볼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 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쮜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참 아름다웠던 지난 여름에 온 마음을 두고 온 나는
아직도 그 바다, 그 밤에서만 헤매다
눈앞이 멀어 버렸다
마음이 얼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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